어제 2009년 봄에 구입한 2008년형 맥프로에 기본장착되어 있던 320GB HDD가 처음으로 애러를 일으켰다.

2008년형 맥프로는 한달에 몇번 켜지도 않고, 생각날때 마다 별 문제 없나 보려고 켜보는 수준이라 예비용으로 연결해둔 HDD가 고장났어도 별 문제는 없었지만, HDD에 써 있던 2008년 12월 18일 생산 이라는 글씨가 짧은 단상을 일으켰다. 13년. 13년의 시간을 지냈구나...

난 오래된 물건들을 좋아한다. 세월의 흔적을 고스라니 보여주는 물건들도 좋아하지만, 오래 가지고 있으면서 나와 함께 시간을 보낸 물건들을 특히 더 좋아한다. 나의 시간이 쌓인, 내가 시간을 쌓은 물건들을 좋아한다.

대학시절에는 이런 저런 카메라들을 쓰고 싶어서 중고로 카메라를 사고 팔았다. 내가 처음 사용했던 카메라도 그랬다. 몇년전 그 카메라와 같은 모델을 중고로 구입했다. 내가 사용했던 그 카메라는 아니지만, 카메라를 매개로 지난 시간의 감정을 어렴풋이 느낄수 있었다. 카메라를 손으로 감싸 잡고, 뷰파인더에 눈을 대면, 희미하게 20살의 내가 느껴지는것 같다.

오래된 물건들에 특별한 감정을 느끼게 되면서 물건을 고를때 오래 사용할수 있는 것인가를 생각한다. 손에 닿는것, 몸에 닿는것, 작업의 도구, 의미있는 시간을 보내는데 쓰는것들은 특히 그렇다. 가방, 구두, 필기구, 악세사리, 가구... 트랜드를 타지 않고, 미니멀하거나 그 브랜드에서 수십년째 만들고 있는 스테디셀러, 혹은 플래그쉽 모델을 우선한다. 1~2년 마다  바꾸어야할 제품보다는 5배의 가격이라도 10년을 쓸수 있는 물건을 고른다. 오래 사용할 수 있는 물건인가와 함께, 오래 사용할 물건인가를 생각해보면 필요없는 물건은 사지 않게 된다.

무언가를 가지고 싶다. 사고 싶다는 생각이 요즘은 거의 들지 않는다. 필요한 것들이 별로 없고, 필요한 것들을 가지고 있기 때문인것 같다. 가질수 없을 때는 필요하지 않은것들도 가지고 싶었는데 지금은 물건에 대한 욕망이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 아이폰 8플러스를 부족함 없이 쓰고 있고, 1세대 애플워치를 잘 차고 다닌다. 2015년에 구입한 맥북프로는 불편함이 없고, 여전히 가장 좋아하는 카메라는 1999년에서 2001년 발매한 니콘의 D1 시리즈다. 

기억할수 없는 것들을 기억하기 위해 기록을 남긴다. 기록으로 남기기 어려운 것들이, 함께한 물건들에 흔적으로 남는다. 지금의 나는 나와 함께있는 것들을 통해 미래에 추억되어질 것이다. 오래된 물건을 좋아하는, 나와 함께 오래지낸 물건들을 아끼고 관리하는 이유인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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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의 첫주 금요일이다.

이번주는 바쁘게 지나갔다.

관리하는 건물이 하나 늘어났다.

신경써야 할 것들과, 만나야 하는 사람들이 늘었다.

미팅을 하고, 싸인을 하고, 도장을 찍고, 스캔을 하고, 메일을 보내고, 문자를 보내고, 전화를 하고,

일상적으로 해야 하는 일들이 조금 더 늘어났다.

도장이 늘었고, 통장이 늘었고, OTP가 또 생겼고, 공인인증서 찾기가 더 어려워졌다.

의뢰중인 세무사님이 일을 잘해주셔서 짐을 많이 덜고있고,

급하게 맡은 법인들도 정리할 방향을 잡았다.

일은 단순하게, 구조는 명확하게, 룰은 단단하게

미루면 감당하지 못하는걸 상기하고.

 

다음주에는 핸드폰 번호를 하나 더 만들고,

혹시 정리되지 않은 것이 있는지 확인하고

이번주 만큼은 아니지만, 당분간은 틈이 없을것 같다.

사회적 거리두기 2.5가 1주일 연장되었고,

1주일간 잘 지켜온 외식안하기도 1주일 늘어났다.

참았다 먹는 사시미가 더 맛있기를 바라고.

오늘은 배달음식을 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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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아주 오랜만에 예전에 올렸던 블로그의 글들을 둘러보았다.

블로그의 첫글이 2009년 2월 19일 이었는데, 오늘이 2019년 1월 21일 이다.

젊었고, 조금은 어리다고 할수도 있었던 때에서, 이젠 절대 어리다는 말은 안나오는 때가 되었다.


지난 시간을 돌아보면 누구나. 언제나 느끼는 것이겠지만.

"참 순수하고, 여리고, 반짝반짝 했구나."

그만큼 미숙하고, 몰랐고, 무모했지만, 지금은 더 살아서, 더 경험해 봐서 "어림"이 벗어진 눈으로 보니

"참 순수하고, 여리고, 반짝반짝 했구나." 하는 생각만 든다.


그때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조금도 들지 않는걸 보니

지금의 난, 그때의 나보다 지금의 내가 더 소중하고, 중요한가보다.

이 블로그에 처음 글을 쓴 그때부터 지금까지의 10여년은 많은 땀을 흘렸고, 많은 밤을 새우고, 많은 일들을 했다.

큰 행운도 있었어서, 들인 땀과 노력 몇배의 결실도 얻었다.

지난 10여년으로 인해 삶의 모습은 많이 달라졌지만, 삶의 자세는 변하지 않고, 더 아름다워지도록 노력해야겠다.

언제까지나가 아니라 더욱

"순수하도록, 반짝반짝하도록, 솔직하고, 용기있도록"

그래서 "살아지지 않고, 살아 가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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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하면서 가장 쓰지 않게 되는 키가 아닐까?

요즘은 의문을 가지는 일을 할 여유가 없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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