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을 마셨다.
술을 마시면 생각나는 사람들이 있다.
그 사람들은 늘 정해져있다.
시리도록 희고, 투명하던 시절이
이렇게 혼자 술을 마신날이면 꼭 느껴진다.
아련한 그리움으로,
그들이 생각나는 것이 아니라,
그 시절의 내가 생각나는거겠지.
희고, 투명하던 그들이 아니라
희고, 투명했던 내가 생각나는 거다.
그래서 그들의 목소리를 들어도,
혹, 그들을 본다고 해도,
이 허전하게 느껴지는 마음이 채워질수는 없는거다.
누구도 채워줄수 없는 허전함이니까.
오직, 나 스스로 잃어버린 것들을 채워가야할 공간을 느낌이니까.
달콤하고, 쓴 와인이
가슴을 타고 흐른다.
우리에게 익숙한 말 중에 어둠이 있어서 빛의 소중함을 알 수 있다는 말이 있다.
하지만, 어둠을 겪어본 사람은 빛에 있어도, 어둠의 기억 때문에 빛을 온전히 누릴 수 없다.
다시 어둠에 빠지지 않기 위해 발버둥치고, 때론 옳지 못한 일도 서슴치 않게된다.
우리가 사는 세상이 빛과 어둠이 극명하게 나뉘어져 있다면,
어둠에 있는 사람은 물론, 빛에 있는 사람도 행복하기 힘들 것이다.
복지란 어둠을 걷어내는 일이 아닐까 한다.
어둠에 있는 사람에게 빛을 비춰주는 일 뿐 아니라,
어둠의 기억이 있는, 어둠에 대한 공포가 있는,
빛에 있는 사람들에게도 불안을 줄여주는 일이 아닐까 한다.
사람들은 필요할지, 필요하지 않을지도 모르는 보험은 들면서,
복지가 늘어나면 세금도 늘어난다며 반대한다.
복지의 본질은 많이 가진자의 것을 적게 가진자에게 나누어주는 것이 아니라
세상의 어두운 그늘을 줄이는 것이다.
못가진 자들을 위하는 것이 아닌
우리가 사는 사회 전체를 위한 것이다.
이것이 내가 생각하는 복지의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