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가 모든 요리를 썩 잘하시는건 아니지만,

김치나 짱아찌류의 맛은 일품이다.

언제까지나 얻어먹을수만은 없는일이라 올해는 고향에 가서 김장을 함께 하며 우리집 김치맛을 배웠다.


가장 처음은 배추 절이기.

소금은 시장에서 일반적으로 살수 있는 소금이지만, 배추는 외삼촌이 직접 키우신 것이란다.

가족과 친척들이 먹을 만큼(600~800포기)만 직접 농사를 지으신단다.

당연히 무농약에 유기농이다.

음식은 재료가 반이라는데 김치는 재료가 80% 이상은 좌우하는것 같다.

서울에서 이렇게 정성들인 배추를 구할수 있을까?

몇 년 후에는 내가 김장을 해 먹을 생각이었는데 일단 한번 좌절했다.

배추를 잘 절이고...







쪽파(우리집에선 당파라고 부른다.)를 다듬었다.

근데 이게 양이 장난이 아니더라.

사과상자 2개의 양이었는데 종자가 잘다.

덕분에 4~5시간 파만 다듬은것 같다.

우리집 김장에는 쪽파가 많이 들어가고, 대파는 2단정도가 들어간다.

이 양은 올해 김장 100포기 정도를 기준으로 한단다.

아무리 다듬어도 끝나지 않는 쪽파 다듬기...

이 쪽파는 부모님이 키우신 거란다.

부모님은 20년 이상을 서점만 하셨지만, 늘 소일거리로 텃밭(서울에서 생각하는 텃밭의 규모와는 매우 많이 다르지만...)을 가꾸셨다.

고향에는 나도 아직 모르는 텃밭들이 곳곳에 있다...

집에서 키운 쪽파... 이걸 서울에서 어떻게 구한단 말인가...

여튼 끝나지 않는 쪽파다듬기...





김장에 배추만큼 중요한 것이 무.

이 무도 집에서 키운거란다...

또 한번 좌절힌다...

무를 채쳐서 넣는 것이 아니라, 무를 갈아 그 즙으로 김장을 담근다.

물은 거의 들어가지 않고, 무 즙으로 김장을 한다.

무를 자르고, 즙을 내는건 아버지가 하셨다.






올해는 처음으로 호박을 삶아넣었다.

늙은호박의 속을 삶아 넣은것 같은데 이 호박도 집에서 키우신 거란다...



많이 들어가지 않은 파도 집에서 키운것...

이정도 양의 파를 손질하는건 우습게 보였다.



갓도 들어가고...



쪽파, 갓, 파를 적당한 크기로 썰었다.

저 손은 아버지.






배도 들어간다.

이 배도 설마 집에서 키운건 아니겠지?

배는 채쳐서 넣는다.




재료들을 손질해두고, 배추가 절 잘여지도록 밤새 두었다.

다음날 아침부터 본격적으로 배추 버무리기를 시작했다.

고추가루와 양념, 멸치젓, 호박물 등을 넣고 양념을 버무렸다.





배추는 밤새 숨이 잘 죽어 있었다.

배추에서 나온 물은 버리지 않고, 김치를 버무리며 물이 필요할 때 사용한다.







김장중 가장 쉬우면서도 손맛이 들어가야 하는 것이 속넣기인것 같다.

배추잎을 한장 한장 펼쳐가며 양념을 바르고 적당히 넣어준다.




100포기의 김치를 이렇게 김장통들어 넣었다.

바로 먹어도 맛있지만, 몇달 후에 진짜 맛있어지는 김장김치.





이렇게 김장김치가 만들어지고,

회사 사람들에게 가져다주려 몇통을 따로 담아서 서울로 왔다.



스무살 때 부터 혼자 서울에서 참 가난하게도 살았다.

20대 초반까지 난 정말 우리집이 가난한줄만 알았다...

아르바이트 하나 하지 않았던 그 때는 정말 먹고 싶은것 못먹고 지낸 시간이었다.

힘들었던 그 시간들 덕분에 22살 때 부터는 충분한 생활비를 벌만큼의 경제력이 생겼다.

직장을 다니는 지금보다 어쩌면 더 넉넉했던것 같기도 하다.


그 당시에는 냉장고를 열면 있는건 김치 뿐이었던게 몇년이었다.

아무것도 아닌것 같았던 김치가 이렇게 직접 김장을 해보니 귀하게 느껴졌다.

우리집 김치는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이었으니까.

지금도 혼자사는 내 집의 냉장고에는 거의 김치만 있다.

냉장고가 가득차면 불쾌해지는 성격이라 필요한 음식이나 식재료는 집 바로 앞 마트에서 그때그때 사서 먹기 때문에

냉장고에는 거의 김치만 들어있다.


내년에도 김장을 하러 가야겠다.

아무래도 우리집 김장김치를 배워서 할 수 는 없을것 같다.

내가 배추를 키우고, 파와 무, 호박을 키울수는 아직은 없으니까.

뭐, 살다보면 이런 저런 일들이 생기니.

혹시 알까. 더 맛있는 김치를 할 수 있게 될지.


김장...

고되지만, 일년에 몇번 얼굴보지 못하는 부모님과 몇시간 동안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할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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