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명 : 인물 사진의 거장 카쉬전
장소 : 예술의 전당 한가람 미술관
기간 : 2009년 3월 4일 ~ 5월 8일


오늘 햇살이 참 따스했다.
지난 3월 21일 상상마당 열린포럼에 참석하고 추첨을 통해 받은 초대권을 가지고 카쉬전에 다녀왔다.

난 영화를 좋아해도 감독과 배우의 이름을 외우려 하지 않고,
그림과 음악을 좋아해도 작가나 작곡가의 이름을 외우려 하지 않는다.
그저 좋아서 많이 보고, 많이 듣고,
심지어 그 그림을 그린 사람의 인생을 쫓아보기도 하지만
난 사람 이름을 외우는 것에는 심히 인색하다.

그 누구들도 그러했듯, 카쉬도 그랬다.
그의 처칠 사진과 헵번의 사진을 좋아했지만 난 그의 이름을 이 전시가 끝나고 외우게 되었다.
아니.
외운것이 아니라, 내가 기억하는 몇 안되는 이름들처럼 내게 스며들었다.




예술의 전당...
3년만인것 같다.
이곳을 마지막으로 찾은건 소극장에서 하던 공연일 때문이었을 꺼다.
그때 공연 사진과 영상을 했던것이 기억난다.




카쉬전은 3층 5전시실이었던것 같다.
매표소 앞은 그리 붐비지 않았다...
하지만 건물 안으로 들어가서는 전시를 보려고 1시간 넘게 서서 기다려야 했다.




계단에서 한 20분...
그리고 길게 늘어선 줄에서 1시간...
그래도 인상적인 사진의 프린트들이 여기저기에 있어 지루하지는 않았다.
가방에 넣어간 서양 미술사 포켓북도 가만히 있는걸 못견디는 날 다독여줬다.




역시 가장 카쉬의 가장 대중적인 사진은 오드리 헵번과 처칠의 사진인것 같다.
두 사진은 포스터로, 대형 프린트로 이곳 저곳을 장식하고 있었다.




사람들이 앞에서서 사진찍을수 있게 뽑아놓은 세로 2M가 넘는 대형 프린트.
장신구 없이도 고고한 아름다움을 풍기고 있는 오드리 헵번...
그의 초상 앞에서 당당히 사진찍는 뭇 여성들을 한번쯤은 만류하고 싶었다.

줄에서 기다리는 시간의 대부분을 이 대형 프린트를 보며 보냈던것 같다.
초상사진은, 특히나 카쉬의 사진은 보는이와 호흡한다.
가만히 보고 있노라면 사진속 인물이 말을 걸어온다.
난 이 고고한 공주님과 짧지 않은 시간동안 마음으로 실갱이를 벌였다.




포스터로 볼때는 조금 부족한듯 했던 처칠의 사진.
하지만 그의 실제 사진을 보고 난 잠시동안 압도당했다.


거의 1시간 30분을 기다리고서야 입장할수 있었다.
카쉬의 인물사진들.
사진속 인물 한사람 한사람이 내게 말을 걸어왔다.
예술가, 정치가, 배우, 당시의 위인들...

어떤 사진은 존재감에 숨이 막힐 지경이었고,
어떤 사진은 감동으로 눈가를 촉촉하게 했다.

사진이 찍히는 그 짧은 시간에 카쉬는 사진속 인물의 일생을 한장의 사진에 담았다.
세계적인 거장을 떠나, 오늘 내가 만난 카쉬는 진정한 예술가였다.




그의 사진중 최고는 이 사진이 아닐까 한다.
말로는 다 설명할수 없는 처칠의 인생이 이 한장의 사진에 들어있다.
사진을 보고 있노라면 그가 존재감있는 목소리로 말을 걸어온다.
"당신은 도대체 무엇인가."
난 과연 그 물음에 답할수 있는가...
난 최선을 다해 살고 있는가...
목표를 가지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 충분한 노력을 기울이는가...




이 사진에서 음악을 들었다.
단순한 음악이 아니다.
그건 세상을 향해 퍼져나가는 아름다움의 극치였다.
첼리스트 파블로 카잘스...
매일 아침 듣는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집이 전시장에 흐르고 있었기에 이 사진이 더욱 크게 다가왔던것 같다.
이젠 바흐의 첼로곡을 들으면 이 사진이 떠오를것 같다.




"내 우물쭈물 하다 이럴줄 알았다."
그 시대에 자신의 묘비에 이런 말을 써넣을수 있는 사람이 버나드 쇼 말고 누가 있었을까?
머리도, 수염도 이미 다 쇠었지만 그의 초롱초롱한 눈은 젊음을 잃지 않고,
오히려 소년의 그것과 닮아있었다.
그가 내게 무슨 농담을 하나 하고 한동안 이 사진 앞을 떠나지 못했다.




"세기의 공주님"
오드리 헵번을 표현할 다른 말이 있을까?
아무 장신구 없이도 고고한 아름다움과 품위는 빛을낸다.

아직 아무것도 몰랐던 여섯살때.
난 이 오드리 헵번과 꼭 닮은 유치원 친구를 짝사랑 했었다.
그래서 추억속 공주님과, 세기의 공주님은 내게 한 사람과 같다.




영국의 위스턴 오든
이 사진에서 그가 어떤 사람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의 표정을 보라.
가만히 보고 있으면 그걸로 느낄수 있다.
그의 삶과... 머지 않아 다가온 죽음까지도...




그의 파란만장한 삶이 그의 눈동자와 표정에 나타난다.
아직도 먼 곳을 바라보는 그의 시선에서 그가 추구하는 먼 이상을 볼수 있었다.
헤밍웨이는 도대체 몇사람 분의 인생을 산것일까?




난 이사람의 이름이 무엇인지 몰랐고, 아마 몇일이 지나면 다시 잊어버릴 것이다.
하지만 이 사진만은 잊지 못할 것이다.
또 그의 음악과 삶도...

작곡가 "잔 시벨리우스"


모든 사진들이 좋았지만, 위의 7명의 인물들의 7장의 사진은 특히나 각별했다.
그 사진들을 바라보고 있으니, 웃음이 나기도, 눈물이 나기도 했다.
카쉬의 사진을 통해 사진속 그들과 농담과 진심을 이야기 한듯 하다.
삶을 나눈듯 하다.


전시실에 있던 시간은 1시간 30분 정도.
더 보고싶은 마음이 있었지만 극도로 예민해진 상태에서 오래 있다보니 정신적으로 지쳐버린듯 피로가 몰려와 나올수 밖에 없었다.
전시가 끝나기전 사람들이 많지 않을 평일에 다시 한번 찾아가 보고싶다.




저녁때가 다되었는데 줄은 그대로다.
사람들이 많이 몰릴 전시이긴하지만...
다음에 온다면 꼭 평일에...




기념품과 사진집을 팔고 있었는데...
그다지 사고 싶은 생각은 들지 않았다.
대형액자는 눈이 갔지만,
집에놓고 보기에 카쉬의 사진은 존재감이 너무 크다.




사람의 인생을 한장의 사진에 담아 영원히 사진을 보는 이들과 대화할수 있게 해주는건 놀라운 마술이 아닐까?

카쉬전을 보며 세월에 스러지는 것과, 영원히 남는것에 대해 생각할수 있었다.

난 어떤 길을 갈것인가.
지금 난 그 기로를 걷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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