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러니 (2010.4.12.)
주륵 주륵 비가 내리닌 밤 11시 10분의 퇴근길.
회사와 지하철 역 사이에 있는 조폭들이 하는 룸 앞에서
머리가 벗어진 조폭아저씨와 왠 청년 하나가 비오는 거리를 뒹굴며 싸우고 있었다.
말리는 몇몇과 거드는 몇몇
몇대 맞고 일어난 청년은 조폭의 벤츠를 연신 발로 걷어차며 고래고래 소리를 지른다.
파킹요원은 능숙하게 벤츠를 치우고
청년은 걸치고 있던 점퍼를 바닦에 내던진채 더욱 소리를 질렀다.
그때 내 귓가에는 차이코프스키의 녹턴이 평화롭게 흐르고 있었다.
발길을 돌려 지하철 역쪽으로 몇발자국 떼고 있는데
옆으로 또 다른 아저씨가 우산을 씌워주던 진한 화장의 연예인 보다 예쁘고 늘신한 룸 아가씨가 스쳐지나갔다.
그 묘한 분위가와 기분의 연속으로 지하철 승강장에 섰는데
노란 안전선 위에 상큼한 비타민 한알이 떨어져 있었다.
왠지 그 상큼한 녀석을 먹고 싶다는 생각을 잠시 하고
승강장 벽쪽의 의자중 비어있던 자리에 앉았는데
옆에 앉아있던 아주머니라고 하기도, 할머니라고 하기도 애매한 아줌마에게서
방금 보았던 비타민보다 향긋한 껌냄새가 진하게 풍겼다.
곧이어 반대편 자리에 앉아있던 아저씨가 좋지 않은 소주 냄새를 풍기자
내가 도대체 어디에 있는지에 대한 물음이 들었다.
아이러니한 상황의 연속.
그때 귀에 꼽은 이어폰에서는
스무살 시절 내게 잊지 못할 감동을 주었던
유명한 찬양 사역자이자
난잡한 성생활과 간통을 이유로 아내에게 이혼소송을 당한 한 남자의 가스펠이 흐르고 있었다.
비오는 날이면 난 예민해진다.
오늘 밤 퇴근길은 아이러니가 충만했다...